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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졸라

전화번호부가 날아갔습니다. 휴대폰으로 문자 한통씩만 좀 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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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Diary 2008/11/18 14:06

내가 좀 강아지

마우스 오른쪽 버튼이 사망하셨다. 왼쪽 버튼도 클릭을 한번만에 인식을 못하는가 하면 드래그 도중에 드래그 해제되는 일이 많아서 오른쪽 버튼의 뒤를 따라갈 날이 머지 않은 듯 하다. 벌써 두 번째, 컴퓨터 본체를 새로 구입하면서 USB 마우스로 바꾼 지 사흘 만에 먹통이 되서 새로 교환 받은 녀석이었는데도 벌써 유명을 달리하다니! 난 좀 비통한 마음으로 검색을 두드렸다. 얘네가 왜 자꾸 죽냐고. 얘네들 때문에 마비노기 티엔루도 죽고 아이온 사라뮤도 죽고 하여간 단체로 죽어 나간다고 이래서야 되겠냐고. 방법 좀 알려달라고.
온갖 검색어로 찾아본 결과 'XP를 포맷하시오.' 'USB 포트를 새로 찾아보시오' 등등의 말이 나왔으나 가장 감명깊게 내게 다가온 해결책은 '중국산 품질이 즈으질이라 그래요. 쌈박하게 좋은 놈으로 바꾸센.'이었다. 무심한듯 시크하게 '더 뭘 바라니?' 하고 묻는 듯한 그 답변에 나는 몹시 감동했고.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벨라를 꼬드겨 하이마트로 산책을 나갔다. 마우스를 사러 말이다.

물론 자랑스런 미모의 강아지 벨라는, 일부러 꼬드길 필요없이 "산책!?" 하고 목소리 끝만 높여 불러도 냅다 달려와서 지가 알아서 산책용 옷으로 갈아 입으려 든다. 지 미모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속내가 드러난다. 재색을 겸비하지 못한 주인으로서는 여간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도 이왕 나가는 거 오랜만의 산책이라며 옷을 입혀주고 머리(귓털)도 좀 빗겨주고 가슴끈도 매어주고 방울도 달아주고 휴지도 좀 챙겼다.

그리곤 생기발랄하게 버스정류장 3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는 오늘이야 몸살날정도로 춥지만, 어제는 그래도 제법 따사로웠던 것이다. 공기도 선선하니 퍽 괜찮고 말이다. 벨라와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았고 후딱 날아갔다가 후딱 돌아올 거리를 부러 유유자적히 걸으며 하늘도 좀 쳐다보고 흙냄새도 좀 킁킁 맡아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을 시기라도 하는 듯,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자전거 바구니에 시츄 한 마리를 단정하게 얹고 달려오다가 벨라를 보고는 '어허~ 인사 좀 하자~' 하고 우리 옆에 따악 멈춰서는 것이다. 평소같으면 상대 강아지와 자신의 몸 크기를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한 후, 자기보다 작으면 덤벼들고 자기보다 크면 도망치던 벨라가,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냅다 뒷발로 일어서더니 훌륭하게 상대견에게 라이트훅을 끊어치는 것이다. 상대가 고 한 방에 맞았으면 상해치사로 벨라랑 내가 사이좋게 감방에 들어가서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텐데, 자전거 높이가 좀 높아서 벨라의 앞발이 닿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의 일이었다. 시츄는 자전거 바퀴 아래 그러니까 제 발 아래 있는 조그만 개새끼가 깝죽대니 여간 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냅다 으르렁대면서 너 죽는다? 하고 신경질을 냅다 부리는데, 벨라야말로 '야, 쳐봐! 쳐봐! 주둥이 닿으면 물어봐!' 하고 허공에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며 깐죽깐죽대는 것이었다.

나는 좀 웃겨서 그 행태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는데, 나 못지않게 자식사랑이 지극한 아저씨는 잘못 건드렸다 싶은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냅다 페달을 밟아 우리에게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거였다. 내가 여기서 웃고만 있어선 안되는 거였는데.

시츄에게서 승리를 거둔 벨라는 몹시 으쓱해하며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항상 적당하게 늘어뜨리고 있던 꼬리는, 유례없이 높이 올라가있어서 놈의 천사의 날개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나는 그저 재밌다며 팔푼이처럼 헤실헤실 웃고 있을 따름이었고.

그런데, 고놈이 앞에서 오던 여중생 한 명과 딱 마주친 것이다. 저 앞에서부터 벨라를 경계하며 걸어온 여중생은 문제집을 앞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다가오기만 해봐, 이걸로 널 쳐버리게써-!' 하고 주시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길 왼쪽으로 걸음을 옮겨 여중생이 지나갈 길을 마련해줄 생각으로 벨라의 어깨줄을 잡아당겼다. 벨라는 순순히 따라오는가 싶었다. 그러더니 냅다 한 마리 악어처럼 여중생 쪽을 날렵하게 내딛었고, 흠칫 놀란 여중생은 펄쩍 뛰어올라 길 옆에 난간을 밟고 올라섰다; 나는 깜짝 놀라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여중생은 뒤도 안돌아보고 줄행랑을 치지 뭔가. 벨라는 무척 으쓱하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놈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나 쫌 멋지지?"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놈의 발을 싹싹 닦아주고는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 무릎 앞에 불러앉혔다. 네가 그래서야 올바르게 자란 강아지라고 할 수 있느냐, 누가 네게 그런 양아치짓을 가르쳤느냐, 행방을 모르는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느냐.. 놈은 건방지게도, 무릎을 꿇고 앉아 간곡히 타이르는 내 앞에서 옆으로 나른하게 드러누워 눈을 깜박거리며 무슨 일이있었냐는 듯 귀 뒤를 탁탁 긁으며 누가 어디서 내 욕을 하냐는 듯이 무시했다. 그래서 나는 너 참 많이 자랐다? 하고 비꼬며 돌아앉아 이불을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 한 마리 영혼이 삐딱선을 타는구나, 이 강아지의 교육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나는 혼자 비분강개해서 탄식을 좀 했다. 애 키우기 참 고단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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