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피아졸라

전화번호부가 날아갔습니다. 휴대폰으로 문자 한통씩만 좀 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Rss feed Tistory
Daily/Diary 2007/11/13 12:16

벨라의 병원놀이

동생은 어제 아팠다. 감기 몸살.
그래서 조퇴를 하러 담임 선생님께 갔는데, 선생님이 꾀병 부리지 말라며 보내주지 않았단다. 그래서 너무 서러워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정말 아픈데 왜 안 믿어주세요, 엉엉 울었다고. 덕분에 화들짝 놀란 선생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기요의 온도를 고온으로 설정해두고 드러누웠단다.

그런데, 여기서 벨라 이야기가 빠질 수 있나.
굉장히 집에 온 동생을 반겨 어쩔 줄 몰라하던 벨라는 방울공을 물고 놀아달라고 타박타박 걸어왔다가 침대 위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아니, 자는 척 하는) 동생을 보고 대단히 실망하고 말았다. 일단 침대 위로 가볍게 뛰어올라가 동생의 포동포동한 볼 위에 앞발을 척 얹어놓고, 방울공을 툭 떨어트려 얼굴에 맞게 한 것까지는 용서할 수 있었다고 동생은 너그럽게 말했다. 피곤했으니까 말이다. 아팠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해도 좋으니 마음대로 갖고놀다가 제자리에 놔두기만 해달라고 중얼거리며 동생은 애써 돌아누웠다. 벨라의 '왜 안놀아줘?' 해맑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래서 동생의 얼굴을 밟아보기도 하고 꼬리로 때려보기도 하고 촉촉한 코로 목 언저리니 귓구멍이니 콧구멍이니 하는 곳을 빠짐없이 간질여보기도 하던 벨라는, 포기하고 말았다. 하긴 막내주인은 자신의 빼앗긴 막내 지위로 인해 벨라를 무시무시하게 질투하곤 했던 터라, 벨라도 동생은 라이벌 의식을 갖고 대했던 터라 놀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굉장히 슬퍼하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벨라는 자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 고 아마도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픈 동생을 간호함으로써 자신의 위치 포인트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욕구도 아마 있지 않았겠는가.
벨라는 짐짓 돌아누운 동생의 옆에서 얌전하게 잠을 청했다. 동생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 벨라에게 팔베개를 내어주고 이불까지 덮어 도닥도닥여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몇 시간 후. 벨라는 눈을 떴다. 바닥이 너무 뜨거웠던 탓이다. 동생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참 잘잔다고 동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벨라는, 열이 올라 발그레한 동생 뺨의 온도를 재느라 코 끝으로 킁킁대며 뺨 언저리를 문질렀다. 과연 열이 높아 뜨끈뜨끈했다.

그러니 할 수 있나.
벨라는 동생의 베개 위로 올라갔다. 자신의 몸으로 열을 낮춰줘야겠다는 생각에, 자느라 따끈따끈 열이 오른 동생의 볼에 모가지를 처억 얹고, 벨라는 다시 웅크려 곤하게 잠이 들었다. 아주 잘 잤다. 자는 동안 '아, 나는 정말 참으로 마음넓고 온화한 강생이로다'. 하고 감탄도 했다. (아르르 잠꼬대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은······.

“벨라가 안나가 ㅠㅠㅠ 안내려가 ㅠㅠㅠ”

울면서 호소했다. 벨라 이 녀석이 자꾸 아픈 자길 괴롭게 한다고. 베개 정중앙을 다투며 중원 정복을 노리더니, 자기를 깔아뭉개는 통에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내려놓으면 또 풀쩍 뛰어올라 자길 방해한다고. 밉다고, 아주 밉다고. 쉬림프 골드에 대한 원망이 아직 살아있는 동생은, 묵은 원한에 오늘의 한 역시 덧붙여 나중에 톡톡히 갚아주겠노라며 눈시울을 가늘게 했다.

벨라는 그저 걱정이 되어선 동생이 웅크려 자고 있는 이불 안을 파고들어가 콧김을 킁킁 뿜으며 아는 척을 했다. 아프니? 어디가 아프니? 목이 아프니? 이마가 아프니? 코가 간지럽니? 귀가 가렵니? 킁킁, 킁킁, 킁킁, 킁킁. 나는 게임을 하느라 울부짖는 동생을 쳐다도 안보면서도, 벨라의 눈망울이 떠올라서 킬킬킬킬 음산하게 웃었다. 귀찮다고 뿌리치기엔 너무나 걱정어린 눈을 하고 순하게 쳐다보고 있을터였다. 고게 좀 연기를 잘하니 말이다.

집에 돌아온 작은언니는 벨라한테 옮으면 안된다며 벨라를 덜렁 집어들어 안고 가버렸다. 동생은 벨라가 사라진 걸 기뻐해야하는지, 아니면 동생이 아프다는데 개새끼부터 챙기는 언니에 대한 섭섭함을 먼저 추스려야하는지 혼란스러운 얼굴로 물을 마셨다. 내 동생은 참 귀엽다. 오늘 아침에 회진 돌러 일찌감치 일어나셔서 동생 방문 열라고 문짝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던 벨라 박사님은 더 귀엽고.

'Daily >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좀 강아지  (10) 2008/11/18
전설을 시도하다  (8) 2008/09/30
울음 소리  (0) 2008/09/11
발전 가능성  (4) 2007/11/22
벨라의 병원놀이  (4) 2007/11/13
겁을 상실한 강아지  (2) 2007/11/12
TOTAL 54,254 TODAY 2